중농주의 Physiocracy

Cait's Story/경제사 공부|2019. 11. 6. 19:20

농업만이 국가에 부를 가져다준다


국왕 루이 15세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애첩인 퐁파두르 부인을 거느리고 프랑스를 지배하던 18세기 중엽, 프랑스의 경제는 영국과의 식민지 전쟁에서 패한 데다 재무장관이었던 콜베르가 실행한 중상주의 정책이 프랑스를 한층 더 어렵게 만들어 피폐함 그 자체였습니다.


중농주의


당시 물품을 만들어 생계를 꾸려나가던 직인(職人)들은 여러 가지 제약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길드에 의무적으로 가입하여야 했고, 갖가지 규칙을 준수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의복을 만드는 사람의 경우 폭 1센티미터당 꿰매야 하는 바느질 침수가 정해져 있을 정도로 규칙이 까다로웠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도로통행료, 세금 및 관세 등을 납부해야 하는 계급이었습니다.


농민들의 경우에는 토지 및 생산물 모두가 과세 대상이었으며, 세액은 영주가 마음대로 인상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농민들은 생산물을 매매하여 이익을 얻는 행위도 금지당했으며, 도로공사에는 자신의 가축과 함께 동원되어 무료 봉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반면 귀족 및 성직자는 일체의 모든 세금이 면제 되었습니다.


중농주의 창시자 케네


베르사유궁전


프랑소와 케네는 이 시기에 퐁파두르 부인의 주치의로서 베르사유 궁전에 기거하게 되었으며, 이훙 루이 15세의 주치의도 겸하게 되었습니다.

베르사유 궁전의 중 2층의 방을 사용하게 된 케네 주변에는 당대 석학들이 모여들었는데, 그는 그들과 교류하며 경제학에 흥미를 갖게 되고 심취하게 되었습니다.


케네와 그의 동조자들은 훗날 중농주의자라고 불리웠는데 그들은 산업 전체에서 농업만이 투입한 비용을 상회하는 성과를 올릴 수 있으며, 상공업은 농업 생산물을 가공하는 역할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농업을 발전시키는 일만이 국가를 풍요롭게 만드는 최선의 방책이라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상을 바로 중농주의라 합니다.


케네


17세기 이후 프랑스는 중상주의 정책으로 인해 농산물의 수출이 통제되었고 공업 등 도시의 수출산업만이 정책적으로 지원을 받아 농업 기반이 매우 피폐해 있었습니다.

케넨느 한 나라의 경제는 농업이 번성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으며 농업만이 증산 가능한 사업이라 주장했습니다.

씨앗은 그 몇 십배의 열매로 그 양이 증대되지만, 공업은 원료를 가공하여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 수는 있지만 이 과정에서 대량의 폐기물이 발생하므로 가공 후 완성품은 결국 그 양이 줄어든다고 주장했습니다.

농산물 수출 금지정책 및 가격통제정책을 해제하여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장려하면, 외국에 농산물을 팔 수 있게 되어 결국은 농업 부문에서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으며, 그들이 더욱 많으 세금을 내고 이것은 경제활동 전 부문에 활기를 줄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케네는 1758년 국왕 루이 15세를 위해 <경제표>라는 것을 작성하여 자본을 자유롭게 순환시키는 사회시스템을 묘사해 보였는데요.

이것은 오늘날의 거시경제학 시점에서 경제를 분석한 세계 최초의 시도였습니다.


자크 투르고

케네를 중농주의의 창시자라고 한다면 중농주의의 거목은 자크 투르고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1774년 루이 16세 재위 당시 재무총감으로 등용되어 곡물거래를 자유화 하고 길드를 폐지했으며, 공공의 작업에 농민을 무상으로 동원하게 하는 행위를 금지시켰습니다.

또 전 국민의 평등을 위해 직업 선택과 교육 및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중앙은행을 설치하였으며, 귀족에게도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파격적인 정책은 당연히 세금을 내지 않고 있던 특권계층인 귀조, 성직자 등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결국 그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직접적인 상소를 받은 루이 16세에 의해 해임되고 말았습니다.


케넨 등이 중농주의 사상에 전념해 있을 당시 프랑스에 체류중이었던 애덤 스미스가 베르사유를 방문했었습니다.

그는 중농주의자들에 깊은 감명을 받고 영국으로 돌아가 훗날 <국부론>을 저술하게 됩니다.


애덤 스미스는 중농주의를 'agricultural system' 혹은 'system of agriculture'라고 표현했습니다.

중농조의자들은 자신들의 이론과 정책체계를 'physiocracy' 즉 '자연의 통치'라 불렀으며, 스스로가 자신들을 'economist'라 불렀는데요.

이코노미스트라는 뜻은 '집을 관리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현재 이코노미스트는 경제학자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코노미스트의 기원은 위와 같습니다.


투르고의 해임과 애덤 스미스의 새로운 사상이 등장함에 따라 중농주의는 짧은 역사의 막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케네는 근대 경제학의 문을 처음으로 연 공로자로서 역사에 그 명성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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