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상주의 정책

Cait's Story/경제사 공부|2019. 11. 2.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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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상주의란 애덤스미스가 'mercantile system' 또는 'system of commerce' 라고 표현한 것으로,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하게 되면 '상업의 체계'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중상주의라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영어권에서도 중상주의라는 표현은 'mercantilism' 이라고 표현합니다.


중상주의


중상주의는 15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유럽에서 발간된 경제관련 저작물에 등장한 이론과 당시의 생산활동이나 무역과 관련된 통제적 경제정책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중상주의>라는 용어는 당시에 사용하던 용어가 아니라, 후대에 애덤 스미스가 당시의 대표적인 경제 정책을 통괄하여 부르기 위해 만든 명칭입니다.

중상주의는 긴 세월에 걸쳐 생성 시행되었으며 또 당시 유럽 여러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던 사상이며 어떤 한 사람의 사상이나 이론이 아니기 때문에 일관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어떤 역사 교과서에서는 중상주의를 가리켜 일명 콜베르주의라고 설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장 밥티스트 콜베르는 루이 14세가 등극하고 있던 17세기 프랑스위 재무총감으로, 국가의 강력한 지도와 통제 아래 프랑스의 공업 생산량을 늘리고 무역을 발전시킨 인물입니다.

콜베르는 가의 힘이란 곧 자국이 보유하고 있는 금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으로 보고 외국으로부터 엄청난 금과 은을 끌어모았습니다.


16세기 중반 ~ 18세기를 중상주의의 황금시대라 볼 수 있는데요.

당시 역사적으로 명망있는 절대 권력자들이 앞다투어 통제적인 경제정책과 무역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중상주의 정책을 추진했던 권력자들에는 엘리자베스 1세 (16세기), 영국의 군사독재 정치가 올리버 크롬웰 (17세기),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 (17 ~ 18세기)가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


엘리자베스 1세가 재위하던 영국에서는 금은을 특히 중시하여, 무역이나 식민지 지배를 통해 금은을 거둬들이고 이것을 국내에 비축하기 위해 무역을 통제했습니다.

이런 정책은 별도로 '중금주의' 라고 불리우기도 합니다.


16세기에는 항해 중인 선박이 태풍을 피해 가까운 나라의 외국 항구에 긴급 피난을 하는 것은 불법 입국이라는 관례가 있었는데, 엘리자베스 1세는 은을 가득 실은 스페인 함선이 태풍을 피해 영국 항구로 피난했을 당시 이를 불법입국이라 명하며, 배 안에 있던 은을 모조리 입수한 일화가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영국이 해상에서 교전을 벌이게 되었는데, 이 전투에서 영국 함대가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영국은 해상패권을 장악하고 외국무역과 식민지 지배에서 우위에 서게 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스페인 무적함대


이후 엘리자베스 1세 때 영국에 동인도회사가 설립되었습니다.

동인도회사는 여왕에게서부터 아시아의 물품을 독점적으로 취급하는 특권을 부여받았으며, 그 대가로 막대한 세금을 정부에 납부하여 영국 재정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을 뿐 아니라 인도대륙의 식민지화를 활발히 추진했습니다.


초기 중상주의는 무역억제를 통해 금은을 국내에 축적하고 유출하지 않는 것을 그 중심으로 했습니다.

하지만 금은의 국외유출 규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주장한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토머스 먼 (1571 ~ 1641) 인데요.

토머스 먼은 동인도회사의 이사장을 역임한 인물입니다.

1621년에 발간된 그의 저서 <A Discourse of Trade, England unto the East Indies>에서 외국과의 무역을 농사에 빗대었는데요.

"농사를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밭에서 보리 씨를 뿌리는 사람을 보고 보리를 버린다고 생각하지만, 사정을 아는 사람은 씨를 뿌려야 가을에 더 많은 양의 보리를 수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무역 역시 이와 같아서 외국에서 물건을 수입하면서 대가를 치르지만 (금은의 유출), 이후 그 수입품으로 효율적인 생산활동을 하여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여 그것을 다시 외국에 더 비싼 가격에 내다 팔아 더 많은 금은을 국내로 유입시킬 수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당시에는 금은을 국내에 축적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고 유출은 절대 안된다는 중금주의 사상이 팽배해 있었는데, 그는 위와 같은 비유를 통해 중금주의를 비판하였습니다.

무역의 차액을 통해 국가의 부를 축적해야 한다는 그의 주의는 무역차액설이라고 불리우기도 합니다.

무역차액설 역시 금은의 축적에 중점을 두므로 중상주의의 범주 안에 속합니다.


이후 무역차액설에 기초하여 각국들은 금은의 유입량에서 이득을 보는 무역수지를 달성하기 위해 국민경제에 대해 적극적인 개입정책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국내 산업 보호 및 육성에 힘썼으며 수입품들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기도 하고, 또 수출 산업들에게는 보조금 혜택이나 면세 혜택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올리버 크롬웰


영국과 식민지를 향한 모든 물품 운송을 영국 국적의 선박으로 제한하는 항해조례를 반포한 올리버 크롬웰이나 루이14세 시절 재무총감이었던 바티스트 콜베르의 정책은 당시의 중상주의 (특히 무역차액설)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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